도예가의 시골 집

도예가의 시골 집

2019.07

부부 도예가 홍성일∙이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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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하지만 복잡한 도시를 떠나 심심하지만 여유로운 시골에 정착했다. 녹차 산지로 유명한 전남 보성에 자리 잡은 ‘노산도방蘆山陶房’과 ‘도도헌 陶軒’. 차 도구를 만드는 도예가 부부의 작업실 겸 찻집인 이곳에선 늘 은은한 다향茶香이 떠나지 않는다. 서울 출신 도예가 부부의 유유자적 시골 라이프.




두 달여간 꼬박 매달려 완성한 도도헌의 다실. 도예가 홍성일·이혜진의 심미안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




부부의 작품을 전시하는 쇼룸 역할도 겸하는 도도헌에는 단아하면서도 정갈한 느낌의 다구가 그득하다.



"부부의 작품을 전시하는 쇼룸 겸 찻집"



서울에서 4시간 30분 거리. 차 한잔하러 가기엔 너무 먼 곳이건만, 놀랍게도 보성 노산도방과 도도헌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번잡한 도시를 떠나 20여 년 가까이 시골 생활을 즐기고 있는 서울 출신 도예가 부부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다. 더욱이 부부가 만든 볼수록 탐나는 다구가 곳곳에 즐비하고, 올해 처음 수확한 햇차는 물론 다양한 차까지 즐길 수 있으니 차를 사랑하는 이들의 방문이 잦을 수밖에. 따지고 보면 노산도방에 ‘도도헌’이라는 찻집을 만든 것도 방문객을 제대로 대접하기 위해서라는게 부부의 설명이다. “처음엔 작품 만들기도 바쁜데 찻집을 내다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노산도방과 도예가 홍성일·이혜진의 작품을 궁금해하는 분들이 늘어나고, 고정적으로 방문하시는 분까지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찻집을 내면 어떻겠냐는 주변의 요구를 수용하게 됐어요. 손님이 오시면 뭐라도 대접해야 하는데, 도방은 복잡하고 어수선해서 차 한잔도 집으로 올라가서 마셔야 했거든요.” 


고민 끝에 작업 공간을 안쪽으로 옮기고 부부의 작품을 전시하는 쇼룸 겸 찻집을 만든 게 지금의 도도헌이다. 2017년 10월에 오픈했으니 햇수로 2년 남짓. 소박하면서도 단아해 볼수록 정감이 가는 도도헌의 인테리어는 부부가 두 팔 걷어붙이고 두 달여간 꼬박 매달린 결과다. 예술가 특유의 심미안 덕분인지, 오랜 시골 생활로 웬만한 건 금세 뚝딱 해낼 수 있을 만큼 공력이 쌓인 덕분인지 “전업해도 되겠다”는 상찬을 들을 만큼 수준 높은 인테리어를 완성할 수 있었다. 


“찻집 이름은 지인들에게 공모를 했어요. 그중 최종적으로 선택한 이름이 ‘도도헌’이죠. ‘차 다茶’ 자와 비슷한 ‘씀바귀 도 ’ 자에 ‘질그릇 도陶’ 자를 더한 이름인데, ‘차와 도예가 함께하는 공간’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어요. 마침 노산도방의 줄임말인 ‘노도’와도 라임이 맞았고요.” 도도헌의 오픈은 부부의 일상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작업하다가 잠시 쉴 때도 볕이 잘 드는 다실에서 여유롭게 차를 음미할 수 있게 됐고, 귀한 손님이 찾아와 담소를 나눌 때도 제대로 차를 대접할 수 있게 됐다. 사람들과의 교류도 더욱 풍성해졌다. 모두 차가 매개가 된 덕분이다. “차를 통해 만난 관계는 한 번으로 끝나는 경우가 드물어요. 굉장히 끈끈한 관계가 형성되죠. 함께 차를 마시며 소소한 담소를 나누다 보면 서로에 대해 더 잘 알게 되거든요. 어쩌면 이렇게 시골에 살면서 다양한 이들과 교류할 수 있는 것도 차가 가져다주는 선물 아닐까요?” 




홍성일·이혜진 부부의 작업 공간은 특이하게도 서로 마주 보게 설계했다.




도도헌의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부부의 작품들.




가족이 모여 담소를 즐기는 거실. 군더더기 없는 인테리어가 특징이다.




찻집 도도헌에 들어서면 바로 마주하는 풍경. 깔끔하고 정돈된 분위기다.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를 존중하다 

지난 4월 25일부터 6월 15일까지 논현동 갤러리 로얄에서 열린 <차 그릇>전도 그런 맥락이었다. 차가 선사해준 예기치 못한 초대였던 것. 국내를 대표하는 공예가들, 그것도 평소 함께하고 싶던 작가들이 대거 참여한 그룹전인데다, 지난해 4월 청담동 민갤러리에서 열린 <차 도구의 회상전> 이후 1년여 만에 도예가 홍성일·이혜진의 근작들을 선보이는 자리라 더욱 설레고 뜻깊었다. “사실 아내와는 옹기로 인연을 맺었어요. 옹기를 배우러 보성에 왔다가 처음 만났거든요. 60대가 대부분인 옹기 공장에 20대라곤 둘밖에 없으니 금세 맘이 통했죠. 전공도 같고, 옹기를 배우러 서울에서 보성까지 내려온 점도 같았고요. 그러다 결혼하고 보성에 작업실을 내면서 차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아시다시피 보성의 특산품이 녹차잖아요? 밥 먹고 물 마시듯 차를 마시는, 말 그대로 ‘일상다반사’를 경험하면서 ‘차 도구를 만들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사실 아내와는 옹기로 인연을 맺었어요.

옹기를 배우러 보성에 왔다가 처음 만났거든요."



보기에도 좋고 쓰기도 편해 차를 좋아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탐내는 노산도방표 다구가 탄생한 배경이다. 재미있는건 ‘노산도방’이라는 이름 아래 환상의 팀워크를 발휘하고 있는 부부의 성향이 정반대라는 것. 간결한 형태와 소박한 색감이 아내 작품의 특징이라면, 남편의 작품은 독특한 형태와 눈에 띄는 색감이 특징이다. 생활 면에서도 아내는 규칙적이고 한결같은 스타일인 반면, 남편은 예측 불가능한 자유로운 스타일을 선호한다. 도시에서 자랐지만 시골 성향인 아내와 뼛속까지 도시 남자인 남편. 하지만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땐 대부분 의견이 일치한다. 서로의 스타일이 다르다는 걸 인정하고 존중하기 때문이다. 보성에 작업실을 낼 때도 마찬가지였다. 제대로 된 건물이 아닌 비닐하우스에서 시작해야 했지만, 맘 편하게 우리 하고 싶은 대로 해보자는 생각만큼은 같았던 것. “몸은 고돼도 맘은 편했어요. 작업이 힘든 건 견뎌도 사람에 치이는 건 견디기 힘들잖아요. 이곳에선 남편과 저, 우리 둘만 뜻이 맞으면 되니까 걱정할 게 없었죠.” 




복층으로 설계한 집은 1층의 작업 공간과 분위기가 비슷하다. 특히 볕이 잘 드는 넓은 창과 나무로 만든 넓은 테이블은 이 집의 트레이드마크다.




1층 입구에 나란히 앉은 도예가 홍성일·이혜진 부부. 학교에서 돌아온 둘째 딸 수인이와 큰딸 예인이가 이름을 지은 고양이 모찌가 함께했다. 


자연과 본질에 가까운 삶 

그렇게 6년여를 보낸 후 2009년 지금의 노산도방을 짓기 시작했다. 부부의 생각을 반영해 1층은 작업 공간, 2층은 생활공간으로 설계했고, 서울에서 솜씨 좋은 목수들을 데려와 차근차근 집을 완성해나갔다. 꽃과 나무를 가꿨고, 자그마한 텃밭도 마련했다. 딸아이들이 좋아하는 고양이도 데려다 길렀다. 천장이 높은 2층엔 다락방도 들였다. 아이들이 속상한 일이 생길 때면 다락방에 숨을 수 있도록. 부부의 본격적인 시골 생활이 시작된 것도 이때부터다. “시골 생활은 여유롭지만 조용하고 심심해요. 밤에 술 한잔 마시려 해도 택시를 불러 읍내까지 나가야 하는 환경이니까요. 답답한 마음에 랜선을 깔고 인터넷을 시작했죠. 결정적인 건 스마트폰이었어요. 블로그, 인스타그램, 페이스북을 통해 사람들과 교류하기 시작했거든요. 거의 실시간 대응이 가능하니 외국 친구들과의 교류도 활발해졌고요. 저희 작품을 온라인으로 판매해주겠다는 제안도 받았죠.” 아이러니하게도 스마트폰 덕분에 부부의 시골 생활은 더 윤택해졌다. 차와 다구를 매개로 많은 친구를 사귀고 소통할 수 있게 된 데다 전시 기회도 더 늘어났기 때문. 올해 역시 갤러리 로얄 전시에 이어 8월 18일부터 울산 다운재에서 전시를 연다. 내년 1월엔 영국 런던에서도 전시 계획이 잡혀 있다. 세계 차 문화에 관한 책을 준비하던 영국인 부부에게 한국의 차 문화에 대한 자료를 보내준 게 계기가 됐다. 이렇게 노산도방과 도예가 홍성일·이혜진의 작품을 알릴 기회는 점점 늘어나고 있는 상황. 하지만 그럴수록 부부의 관심은 더 본질적인 것으로 향하고 있다. “요즘은 작품을 눈에 안 띄게 만드는 쪽에 집중하고 있어요. 일본의 단시短詩 하이쿠처럼 아주 간결하게 차 도구 본연의 특성에 충실하게 만드는 거죠. 각각의 차 도구가 서로 조화를 이루며 잘 어우러질 수 있도록요.” 보성살이 20여 년 만에 서울 출신 부부 도예가의 삶은 자연에 그리고 본질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그들의 작품 역시도. 




노산도방· 도도헌 

찻집 도도헌에서는 1만~5만 원대의 한국 녹차와 발효차, 무이암차·광동오룡차 같은 중국 청차, 산오룡차·복수산오룡차 같은 대만 청차를 즐길 수 있다. 도도헌 내부에 전시된 주인장 부부의 작품도 구매 가능하다. 


주소 전남 보성군 보성읍 노산길 6-11 

운영 시간 오전 10시~오후 9시 

문의 노산도방 대표 홍성일 010-9259-4659, 도도헌 대표 이혜진 010-3994-3666